흔하 자연분만은 일시불, 제왕절개는 할부라고들 한다.
도대체 할부 기간은 얼마이며, 얼마만큼씩 나눠지는건지 궁금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의 경험에 기반하여.
0. 준비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제왕절개가 확정된 후 수술 이주 전 간단히 설명을 들었다.
보통 하반신만 마취 후 아이를 보고 수면마취 후 봉합한다고 한다.
그때까지만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수술 당일,
아침에 당분간 마지막이 될 샤워를 하고
무거운 배를 들고 병원에 가면
병실을 안내받고, 옷을 갈아입고, 항생제 반응 여부를 보는 주사를 맞고, 수액용 주사바늘을 꽂는다.
수술 전 마지막 검진 후, 잠시 대기하였다가 드디어 수술실로 이동.
휠체어에 앉혀주는데 수술실에 들어가면 바로 다시 일어나 내 발로 움직인다.
이럴거면 왜 휠체어에 태웠지? 하는 생각.
수술실 들어갈 때 남편, 부모님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후다닥 들어가게 되었다.
TV에서는 애틋한 시선을 교환하기도 하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다.
1. 수술
수술실에 들어가니 마취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수면마취를 할 수도 있고 원래 설명처럼 하반신만 했다가 수면으로 돌릴 수도 있다고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주셨다.
척추에 주사를 놓고 하반신 마취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다리에 찬 것을 대보고 소변줄을 꼽고 수술 부위를 소독솜으로 닦는데 큰일이다, 느낌이 난다.
소독솜으로 닦는 것이 느껴지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지만, 내 몸을 만지는 느낌인 것은 분명했다.
이러다가 칼로 째는 것도 아프지는 않지만 느껴질까봐 덜컥 겁이났다.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수면마취를 해달라고 할까, 수십번을 고민하다가, 아프지 않다면 느낌이 있는건 조금 참아봐야겠다, 그래도 다들 하는데 괜찮겠지, 내가 가장 먼저 아이를 보고싶다, 등등의 생각으로 나를 위로하며 참고있었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수면마취를 조금 해주겠다고 하셨다.
정신은 있지만 약간 몽롱해질 수 있고 아주 약간 기분이 좋아질거라고.
선생님,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있는데 기분이 좋아질리가요... 그래도 긴장은 조금 풀렸다.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고, 나는 팔을 양 옆으로 벌려 받침대에 묶여진다.
곧... 아무 느낌은 나지 않지만 수술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이 흔들리며 무언가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났다. (아픈 것은 절대 아니다)
잠시 후 울음소리가 나고,
아기 왼쪽으로 보여드릴게요, 하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곧 아기를 내쪽에 보여주신다.
뽀로야,
다른 말은 생각나는게 없었다.
그냥 태명을 불렀더니 울음을 그친다.
그것만으로도 감격이었다.
그 이후에는 수면마취를 하고, 봉합을 하고 회복실로 옮겨졌다.
봉합을 하고 팔이 풀린 후 팔 모으세요~ 라는 말에 팔을 가슴 위에 올리고, 수술침대에서 회복실용 침대로 옮겨지고, 수술하며 쓴 것 같은 피가 뭍은 천들을 치우는 것을 보며 그렇게 회복실로 실려갔다.
회복실로 옮겨졌을 땐 사실 거의 잠은 다 깨서 정신이 있는 느낌이었고, 언제 병실로 이동하지, 하는 생각만 계속 했다.
2. 첫날
회복실에서 병실이 있는 층으로 오니 로비에는 엄마아빠가 있고 남편은 방 안에서 다시 한번 침대로 나를 들어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옮겨 눕혀진 후 핸드폰으로 아기 사진을 다시 보았다.
정신 없는 와중에 보았던 아기라 이제야 제대로 보는 것 같다.
느낌이 이상하다. 정말 내 애기가 맞는지, 이 아이가 내 뱃속에 있던게 맞는지.
이상하게 너무 멀쩡했다. 정신도 멀쩡,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멀쩡한 느낌.
친구들,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고 카톡을 해도 무방한 상태.
시간마다 간호사가 와서 아래 깔아둔 패드를 갈고, 혈압과 체온을 쟀다.
수술 첫날이기 때문에 밤에도 계속 체크한다.
이날 가장 아픈 것은 체크할 때마다 배를 누르는 것.
그렇게 세게 누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엄청나게 아팠다.
수술 후 4시간쯤이 지나자 아기가 방으로 왔다.
잠시만 있다가 갔지만, 정말 내 애기구나, 너무나 작다, 다시 느낀다.
수술 후 6시간이 경과한 시점부터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6시간이 지나니 다리 마취가 다 풀렸다.
가져온 텀블러와 빨대로 물을 많이 마셨다. 배가 고프니까...
수술 후 7시간 30분 경과, 이제 고개를 들어도 된단다.
드디어 배게를 벨 수 있다.
계속 같은 자세로 딱딱한 곳에 누워있으니 몸이 배긴다.
특히 발꿈치, 꼬리뼈 등 뼈가 잘 만져지는 부분들이 그렇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은 계속 최대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3. 2일차
얼굴이 조금씩 부어옴을 느낀다.
드디어 미음을 시작으로 밥을 먹는다.
병원 밥인데도 꼬박 하루를 굶은 뒤 먹는 미음이 너무 맛있어서 싹싹 긁어먹었다.
(물론 4일차쯤 되면 다 밍밍해서 맛이없다....)
아직까지 허리를 펴기가 어렵다.
소변줄을 드디어 제거하고 4시간 후 소변도 정상으로 봤다.
아직까지도 진통제 덕에 아픈 것은 잘 모르고 다만 침대에서 일어났다 누웠다 할 때 장기들이 우르르르 굴러다니는 느낌이다.
많이 걸어야 빨리 회복된다기에 병원 복도를 한번 두번 오가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지쳐서 결국엔 다시 눕는다.
4. 3일차 ~ 4일차
링거를 뺐더니 진통제 효과가 떨어진다... 배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난다.
생리통같은 느낌인데, 나는 워낙 생리통이 심했었는데도 그보다 조금 더 아프다.
바로 주사 진통제를 다시 요청해서 주사를 맞고 잠시 기절한듯 자고나니 약기운이 돌아서인지 훨씬 나아졌다.
4일차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진통제를 요청했다.
모유수유 자세를 배우고 아기에게 물려본다.
아직은 아기도, 나도 서툴러서 가슴도 아프다.
3일차에는 한번에 10분 이상을 걷기가 힘들다. 허리도 여전히 구부정하다.
4일차에는 그래도 많이 걷고, 특히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한시간 이상을 걸어다. 허리는 많이 펴진 상태.
여전히 머리는 감을 수 없기에 드라이 샴푸에 의존한다.
4일차 저녁이 되니 모유가 돌기 시작하는지 가슴이 땅땅해져 아프기 시작했다.
4일차가 하필이면 주말이었어서 가슴 마사지, 상담 등이 불가능했다.
급한대로 냉팩을 받아 가슴찜질을 해주었다.
발도 슬금슬금 붓기 시작했다. 다리를 올리고 자면 조금 나아진다.
5. 5일차
드디어 퇴원...!
몸은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침대에 오르내리는것은 힘든 상태.
장기 우르르 느낌이 여전하다.
허리를 완전히 펴고 당당하게 걷기!는 몇일 후 실밥을 푼 뒤 가능했다.
내 퇴원수속을 하고 아기를 데리고 조리원으로 향한다.
자연분만은 하지 않아 비교는 어렵지만,
힘든 기간이 길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견딜만 했다.
벌써 두달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그런지, 다시 아기 낳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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