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0.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핸드폰을 보며 놀고 있으면 짜증이 난다.
남편이 마시는 사과 당근 주스를 위해 매일 1kg씩 당근을 다듬을 때마다 나는 마시지도 않는데 왜 매일 이렇게 해야 하나 싶다.
매일 하는 고민의 80%는 뽀로는 뭘 먹이지, 우리는 뭘 먹지 하는 것이다.
...
육아휴직을 하고 제네바에 오면서 실질적인 집안일을 하게 된 지도 4개월이 넘어간다.
그동안 굴곡이 있지만 많은 경우 위와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감이 불쑥불쑥 밀려오는 건 사실이다.
특히나 일의 결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여야 다음 일을 하는 원동력을 얻는 내 성격 상 매일 반복해도 티도 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으니 외부와의 단절보다 더 미칠 노릇이기도 하다.
계속 이런 상태일 수는 없어 며칠 전부터 그날 나온 설거지는 모두 끝내고 자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저녁 설거지를 하고 나서도 남편이 운동 후 마신 컵, 설거지에 빠진 것들, 뽀로 이유식을 만들고 난 것들이 조금씩 남아 있곤 했다. 그리고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다음날로 미루기 일쑤였다.
하루가 말끔히 끝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몇 번을 다시 하더라도 설거지 만이라도 끝내고 자기로 했다.
아침에 그나마 이전보다는 깔끔한 주방을 보며 다시 하루의 시작을 맞이하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이 많이 있었는데
오늘 당근을 다듬으며 문득 이게 지금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불평없이 능동적으로 했듯이,
지금 내가 하는 주스 만들기, 식단 짜기,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등이 앞으로 1년 반 동안 내가 맡은 직무인 것이다.
회사에서 내 일을 옆에 사람이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 적이 없었는데
집안일도 내 일이라면 내가 하는 것이 맞다.
이는 현재 내가 전업 주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내가 회사에 복직하게 된다면 당연히 서로 분담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언젠가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고 내가 복직하게 된다면 반대의 역할 분담을 하게 되겠지.
물론 회사에서도 내가 일할 때 옆 사람이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나긴 했지만,
지금처럼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집을 치우는 것도 단순히 지저분해서가 아니라 내 일터를 내 취향에 맞게 정리하고, 꾸미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옛날 왜 맨날 엄마가 그렇게도 방좀 치우라고 했었는지도.
이 생각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일이라는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도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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